|메디칼타임즈 박양명 기자| 이비인후과 개원가를 중심으로 개원의 5~6명이 팀을 만들어 공동으로 대진의를 고용하는 '순환대진근무제'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순환대진근무제는 말 그대로 대진의가 요일마다 지정된 의원에서 진료를 보는 것이다. 대진의가 오는 날 해당 의원 원장은 휴식을 취하면 된다.

서울 강서구 비전이비인후과 문인희 원장은 순환대진근무 개념을 지난해 처음으로 도입해 실행에 옮기고 있다.

문 원장은 "머리를 식히러 의원 건물 옥상에 올라갔는데 아래층 국밥집 사장이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집사람한테 맡겨놓고 쉬고 있다며 국밥집에 꼭 붙어있지 않아도 된다는 사장의 대답이 충격으로 다가왔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의사는 국밥집 사장처럼 아내에게 대신 진료를 맡길 수도 없다. 일반 직장인들은 정기휴가 외에 월차, 연차를 내며 쉴 수 있는데, 개원의는 출근하면 퇴근까지 조금의 자유도 없이 진료실에 매달려 있어야만 한다"고 토로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순환대진근무'다.

문 원장은 30분 거리 내외에 있는 이비인후과의원 원장을 모집해 서로 쉬고싶은 날을 조율했다. 휴가는 1년에 2주씩 가기로 했다. 각자 원하는 시기에 2주 이내 기간으로 휴가를 사용하되 봄에 3일, 가을 7일, 겨울 4일로 나눠서 사용할 수도 있다.

휴가에 따른 진료공백을 대신하기 위해 대진의를 초빙했다. 대진 비용은 환자수에 따라 일당 45만~50만원 수준으로, 화~토요일(월요일은 대진의가 없다) 주 5일 진료하면 서울기준 봉직의 페이 수준인 월 950만~1000만원을 지급한다. 대진비는 의원 환자 수에 따라 차이를 뒀다.

대진의를 초빙한 원장들은 각각 5만원씩 내서 대진의 명의로 의사 배상보험에 가입했다. 대진의가 진료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의료사고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대진의에게도 조건이 있다. 대진 의원에서 진료하는 기간 동안 노하우 등을 인수인계 받았기 때문에 향후 개원을 하더라도 대진 의원 근처는 피해야 한다.

문 원장은 "주 15시간 미만, 월 60시간 미만 근무자는 일종의 프리랜서기 때문에 세금은 자유직업 업종으로 3.3%만 내면 된다. 하루 일당에 세금 1만5000원 정도 추가로 내면된다. 대진의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보지 않아서 고용보험과 산재보험 의무가입 대상도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대진의를 보건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등록하기 위해서는 ▲대진의 성범죄 전력 조회 ▲보건소 대진 등록 ▲심평원 등록 등 3가지 절차가 필요하다.

심평원에 등록할 때는 원장이 해외로 휴가를 가는 동안 대진의만 진료를 보는 경우와 원장이 국내에 체류 중이거나 같이 진료하면서 대진을 쓰는 경우로 나눠서 해야 한다.

의사들에게는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해당 의원을 믿고 오는 환자들의 반응은 괜찮을까.

문 원장은 "문제없다"며 "대진의가 출근하는 날을 미리 환자에게 안내하고 있다. 오랫동안 관계를 쌓아온 환자들은 대진의 출근 날짜를 피해서 내원한다"고 말했다.

문 원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2기 팀을 구성해 새로운 순환대진근무를 시작했다. 문 원장이 속한 팀 외에도 강남과 경기도 일산에 팀이 만들어져 운영중이다.

그는 "2기 멤버 모집 공지를 내자 많은 관심이 이어졌다. 그러나 지역이 제각각인데다 대진 요일 조정에 어려움이 있었다. 금요일은 선호하지 않는 경향이 강했다"고 말했다.

그는 '순환대진근무'의 장점으로 선배와 후배가 윈-윈할 수 있는 제도라는 점을 가장 먼저 꼽았다.

문인희 원장은 "업무 강도로 보면 병원 봉직보다 개원의 대진이 좀 더 수월할 것이고 장래 개원을 생각하는 이비인후과 전문의라면 진료 외의 요소를 경험하기 위해 여러 개인 의원에서 다양한 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순환대진제가 확산되면 이비인후과 의원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고 후배들이 취업할 좋은 직장이 늘어나는 셈"이라며 "이비인후과 뿐만 아니라 다른 진료과에도 이런 방식을 확대해서 적용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의사 개인 '삶의 질' 향상도 보장한다고 자신했다.

그는 "개원의는 흔히 2평 진료실에 갇혀, 의노예와 같은 표현을 쓰면서 자기 비하를 하거나 자괴감에 빠진다"라며 "그런 압박감에서 벗어나 자유 시간을 가지니 삶의 질이 확실히 좋아졌다"고 말했다.